잡담

모듈성과 알갱이성, 그리고 진보운동

下學上達 2012. 3. 8. 04:04
나꼼수나 뉴스타파 제작진 같은 경우는 사실 매우 큰 희생을 감수하고 그런 일들을 한다. 강정마을의 활동가들이나 파업에 나선 언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의지는 참으로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높은 수준의 희생을 상시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말을 좀 바꾸면, 뭔가에 참여하기 위해 한 개인이 투자해야 하는 자원의 최소 요구량이 매우 높다면, 그것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목숨을 걸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일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뭔가 공동으로 이루어가는 행위에 참여하는데 요구되는 노력의 최소치를 대폭 낮춰야한다. 이것을 벤클러(Yochai Benkler)는 '알갱이성'(granularity)이라 불렀다. 즉 한 개인이 알갱이와 같이 작은 크기의 기여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런 개인마저도 공동 행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대폭 낮춘다는 것이다.

추가하자면, 노력의 양 뿐 아니라 종류도 문제다.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삐라를 뿌린 후에 감옥에 가야 하는 딱 한 종류밖에 없다면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음악, 미술, 학술, 공예 등등 참여할 수 있는 행위의 종류가 많다면, 또 그 각각의 행위들이 독립성을 갖추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보다 많은 사람이 공동의 노력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벤클러는 '모듈성'(modularity)이라 불렀다. 전체 행위를 여러 종류로 쪼개서 각각의 모듈로서 존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듈성과 알갱이성으로부터, 2013년 이후 진보운동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활동가'라는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결의를 바탕으로 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별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다. 진보적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행위를 모듈처럼 여러 종류로 나누고 그 크기를 대폭 낮춤으로써, 일반 생활인들의 참여의 폭을 넓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활동가는 마치 레고 블럭을 맞추는 사람 같이 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현 정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ㅠ 근데 또 역설적으로 현 정권같은 애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위와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