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회과학도가 본 ABM

1-3. 시스템, 친숙하면서도 어색한...

下學上達 2013. 3. 12. 03:21

사회과학이란 것 역시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에 모든 사회과학도들은 어떻다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뭉뚱그려지는 특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편의상, 일단 선형적 인과 모형을 주로 사용하는 사회과학도들을 전제하고 포스팅을 해보려 한다. 통계 기술적으로는 linear regression 적인 기술을 주로 사용하며, 'Y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 같은 형태의 연구문제들을 주로 다루는 것 말이다(나도 포함된다).


행위자 기반 모형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어색함은, 기존에 배워왔던 선형적 인과 모형과 근본적으로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시스템(system)이 아닌가 한다. 이 시스템의 개념을 이해하면 행위자 기반 모형의 논리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시스템 식의 사고방식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사회과학도들이 어색해하는 것 같다.


시스템은 '상호작용하는 또는 상호의존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전체로서, 공통의 기능 또는 목적을 갖는 것' 정도로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어떻게 정의를 하든, 보통 시스템은 1)부분, 2)상호작용 또는 상호의존, 3)전체로서의 기능 또는 목표, 이 세 가지가 필수적인 구성요소이다. 이 세 가지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적인 사고 자체가 하나의 모델링 방법이라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전체. 말은 참 좋은데,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구상하든지 간에 반드시 실제 세계의 모습에서 제거되고 생략되고 단순화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어떤 시스템의 모습을 떠올릴 것인가, 이것은 어떤 단순화 가정(simplifying assumption)에 입각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다. 바꿔 말하면, 어떤 이론적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떠올리는 시스템이 다 다를 것이고, 더 나아가 연구자마다 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떠올리는 시스템이 다 다를 것이다. 시스템적 사고 자체가 곧 모델링의 일환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행동(behavior)을 보이는가를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연구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What if....?", "Under what condition....?"이 기본적인 연구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만약 이런 조건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와 "이런 결과가 나오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되지?"는 순서만 바꾼, 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스템(모델)로 두 가지 종류의 연구문제에 다 접근할 수 있다. 얼핏 보면 "Y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선형적 인과 모형의 연구문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선형적 인과 모형의 기본 구성단위가 변인(variable)이라고 한다면, 시스템의 상태를 나타내주는 것은 state variable 이다. 즉 state variable 의 값의 변화를 통해서 시스템의 상태 변화, 즉 시스템의 행동을 볼 수 있다. 


중요한 차이는 연구 대상 현상을 모델링 함에 있어서 그 현상을 일으킨 원동력을 내부에서 찾느냐 외부에서 찾느냐 하는 점인 것 같다. 선형적 인과 모형에서의 독립 변인(independent variable)은 보통 외생 변인(exogenous variable)이라 불린다. 종속 변인(dependent variable)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양 변인의 변화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경향성을 띄게 되면 독립변인이 종속변인의 원인이라고 추론(infer)하는 것이다. 반면, 시스템에서는 영향을 주고 받는 요소들이 모두 시스템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시스템의 요소들이 시스템 밖의 환경(environment)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모델에 포함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접근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시스템이 보이는 행동들은 어떤 외부적 요인의 작용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요소들 가운데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A와 B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색할 수 있다. 유학 온 첫 학기에 Dynamical System에 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제목 그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system 의 변화에 관해 배우는 수업이었다. 첫 주에 state variable 과 parameter 에 대해 배웠다. 나는 왜 그냥 variable 이라고 하지 않고 state variable 이라고 부르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담당교수에게 질문도 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스템적 사고'라는 것이 오랜 기간동안의 교육을 통해 자리잡혀 있는 이공계통과의 차이점이었던 것 같다. 수업의 초점은 system 이 아니라 dynamical 이었다. 즉 시스템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과 감각(감각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중에서도 dynamical 한 시스템에 대해서 배우는 수업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를 포함하여, 선형적 인과 모형 식의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본적인 용어와 개념의 차이부터도 적지 않은 혼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행위자 기반 모형은 이러한 시스템을 기술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포스팅으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