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부

사회적 원자(2010)

下學上達 2011. 7. 23. 11:17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2010). "사회적 원자". 사이언스북스.

마크 뷰캐넌이란 사람은 '네이쳐'지의 편집장을 역임할 정도로 자연과학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당연히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 그런데 나에게 마크 뷰캐넌은 대단한 충격을 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다른 책이었던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원제 : Ubiquity)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바시의 "링크"(원제 : Linked)를 읽고 대단한 흥미가 생겨서 인터넷 서점에서 그와 비슷하다고 추천한 책들을 마구 읽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적지 않은 내용이 비슷해서 흥미가 있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 만났던 책이 마크 뷰캐넌의 책들이었다. 특히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에 소개되었던 소위 "보편성 부류"라는 개념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한 시스템의 특성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별 구성요소들의 특성에 '전혀' 영향받지 않으며, 오히려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양상에 따라 시스템의 특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 시스템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지금껏 대학원에서 해오고 봐왔던 것들은 '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출발했다. SES(그룹 이름이 아님...ㅎ Social, Economic Status)로 대표되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른 '변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기본 전제였다. 근데 그게 아니랜다. 인터넷에서 악플이 달리는 것은 개인의 악한 속성과는 무관하며, 말도 안되는 의견이 다수에게 확산되는 것은 개인이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인터넷 상의 각종 '병리현상'에 대해 근엄한 표정으로 내렸던 진단과 처방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게 된다.

마크 뷰캐넌의 이번 책 "사회적 원자"(원제 : The Social Atom)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보다 사회과학의 여러 문제들로 초점을 옮겨왔다. 내가 가장 강하게 받은 느낌은, "이 양반이 사회과학자들로부터 크게 비판(항의/변명/쫑크)받은 것이 있나?"하는 것이었다. 책의 서문부터 끝 장까지 사회과학자(주로 경제학자)에 대한 훈계(심하면 조롱)가 짙게 깔려있었다. 쉽게 말해 '너희가 사회를 연구한다고 해왔던 작업들은 기본적으로 접근 방법이 틀렸을 뿐 아니라, 사회과학 자체가 태동했을 때의 아이디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나온 것이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의 핵심은 이렇다.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도 '개인'이라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계를 이루는 원자를 아무리 봐도 그 물질의 특성을 알 수 없듯이, 사회도 개인에 현미경을 들이대봐야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이며, 그에 따른 '패턴'의 형성과 변화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에 따라 사회과학의 목적도 달라져야 한다. 사회적 원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패턴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개별 원자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또는 개별 사건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와 같은 '개별적 예측'은 할 수 없다. 단지 어떤 패턴이 생겨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며, 오히려 잘못된 전제위에서 행해져왔던 비과학적인 예측을 바로잡는 과학적 진보에 가깝다.

마크 뷰캐넌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펼치기 위해 여러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액스텔(Rob Axtell)의 기업 규모 연구이다. 미국에 있는 수천 개의 기업들의 규모를 조사해서 규모와 그에 해당되는 기업수 사이의 분포를 그려봤더니 멱함수(power law)가 나오더랜다. 여기까지야 뭐 대단한 게 없지만, 이 사람은 거대한 기업의 등장에 관한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을 만들었댄다. 기업이 하는 사업의 종류나 뭐 그런 것들은 다 생략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그리고 게으른 사람에 의한 '무임승차'를 중심으로 거대 기업의 등장을 재현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결론은 한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오너의 능력도 아니고 대단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여 대박을 쳤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이런 시각으로 봐도 현재 우리 나라에서 횡포를 부리는 대기업들은 참 문제가 많다)

이런 사례 등을 놓고 봤을 때, 매우 과감한 '단순화'가 주는 강력한 힘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뭔가 모델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화한다는 것인데, 포인트는 무엇을 얼마나 단순화할 것인가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했었던 선형적 인과 모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는 사회 현상을 변인(variable)으로 만들고 그것들 사이에 화살표를 그어 인과관계를 나타나는 모형만 만들어왔다. 생각도 그런 식으로 굳어져있다. 복잡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도 이럴진대, 다른 학자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개별 단위들의 특성을 과감히 무시하고 매우매우 간단한 상호작용의 규칙과 방식만을 모델에 반영하는 것 만으로도 사회 현상의 본질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은 눈이 확 뜨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이제부터 공부할 것이 이런 것들이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기도 하면서, 누군가 다 해놨을 것 같은데 하는 느낌도 든다. 어쨌든 "사회적 원자"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나 또 다른 전작인 "넥서스" 같은 책들은 너무 자연과학적이어서 사회과학도가 접근하는데 장벽이 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크 뷰캐넌의 이번 책은 그런 장벽은 거의 없다. 대신 더 큰 장벽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회과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차이이다. 어찌됐든 원서로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