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부

게임적 세계관

下學上達 2011. 7. 28. 10:53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주변 자연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달라질 것이다.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친구이자 두려움이기 때문에, 기술이나 세계관이 바다의 작동 방식에 맞춰 발달해 왔을 것이다. 사막, 극지방, 산악 지대 등도 비슷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도구(미디어)를 쓰는지에 따라 사고방식이나 사고체계가 달라진다는 마샬 맥루한(Marshal McLuhan)의 이야기도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소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떤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게임적 세계관"이라 부르고 싶다. 여러 디지털 미디어(또는 서비스)중에서 굳이 게임인 이유는, 따지고보면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는 게임이 그 발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등의 대중매체 시대 이후(물론 나는 여전히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옆에 다른 매체들이 함께 서게 된 것일 뿐...), 마치 게임을 하며 게임의 화면을 보듯이 세상을 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아직 "게임적 세계관"이 주류이거나 가장 강력한 세계관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회의 몇몇 부분에서는 그 존재감이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스포츠 분야이다. 스포츠가 곧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의 스포츠 팬(나는 그들을 팬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 유저일 뿐이다)들은 프로 스포츠의 선수나 코칭 스태프들이 자신이 조종하는 게임의 유닛처럼 움직이길 원한다. 또 게임의 결과가 좋지 않거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으면 맹비난을 퍼붓는다. 실제 게임기였다면 조이스틱이나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전원을 꺼버렸겠지만, 실제 세상은 그럴 수 없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또다른 게임적 세계관의 핵심도구)을 통해 맹비난을 퍼붓는 것 뿐이다. 

게임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다른 현상은 이른바 '가볍고 즐거운 정치 참여'이다. 2008년 촛불집회라든지 최근에는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생들의 점거농성 등에서 보여진 현상들이다. 그들은 무거운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는 사람들의 삶에 밀접한 이슈들이 정치 사회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즐겁고 가볍고 다양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규모의 집회 와중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무거울 수 있는 점거농성 현장에서도 음악과 댄스의 향연이 벌어진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사고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점이 아니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대체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점이다. 냉전 시대가 끝났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사적 변환기다 등의 내용없는 수사로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탈냉전 이후의 디지털 시대도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는데, 왜 하필 지금의 모습인가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듯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고, 게임 스크린을 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게임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인터넷 시대, 일견 활발해 보이는 정치참여가 게임 유닛을 조종하는 유저의 마인드일 수도 있고, 일견 발랄하고 경쾌해 보이는 참여방식이 게임 스크린을 바라보는 유저(또는 관객)의 마인드일 수도 있다. 아직 이 게임적 세계관이 충분히 확산되고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연구결과들이 게임(넓게 봐서 스크린을 사용하는 디지털 미디어 일반)이 갖는 부정적 결과들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연구들이 부정적 결과들을 단순히 기술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 몇 년의 연구들은 뇌과학 등의 연구결과에 힘입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게임적 세계관과 관련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게임적 세계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내놓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