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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인간, 복잡한 사회
1-1. 모델: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산다. 본문
모델. 또는 우리말로 모형.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면서도, 의외로 의미 혼란이 적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연구자의 이론적, 방법론적 시각에 따라 관심 대상 현상의 핵심 요소를 추출하여 재구성한 것." (김웅진, 김지희(2005). "정치학 연구 방법론". 명지사)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주로 '인과 모형'(causal model)을 배웠다. 주로라기보다는 그게 다였다. 따지고 보면 모델의 정의 자체에는 반드시 인과 모형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왜 이렇게 인과모형에 얽매여 있는지는 너무 큰 주제라서 다루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 시각에 따라" 라는 점이다. 사례를 들면서 얘기를 시작해보자.
칼싸움 놀이하는 애들이다. 요새 아이들이야 다들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놀아도 컴퓨터 게임이 주를 이루겠지만, 옛날에는 거의 다 저러고 놀았다. 그럴듯한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냄비 뒤집어 쓰면 그게 투구였고 보자기 어깨에 두르면 그게 망또였다. 공사장 각목 하나면 전설속에 나오는 보검이 됐다.
쉽게 알 수 있듯이, 그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그 냄비, 보자기, 각목이 정말 냄비, 보자기, 각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하찮은 물건들이 그 아이들의 머리 속에서 그렇게도 멋진 무기가 되는 것은, 단지 그네들이 어려서 뭘 모르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 도구들이 아이들의 "목적"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란 당연히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전쟁놀이를 그럴듯하게 하고 싶은데, 숟가락을 들고 칼이랍시고 들고나갈 아이는 없다. 걔들도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재미있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에 맞는 그럴듯한 것들만 아이들의 장난감 무기가 될 자격을 얻는다.
사례 하나 더.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을 때 쓰는 인형(?) 같은 것이다. 지푸라기나 끈 같은 걸로 만들어서 저주를 걸고 이쑤시개나 바늘을 꽂는다. 머리에 꽂으면 저주의 대상이 갑자기 두통이 생기고, 배에 꽂으면 복통이 생기고, 뭐 이런 장면들이 영화에 가끔 나오는 걸 다들 봤을 것이다. 이 인형의 목적은? 당연히 저주이다. 이것도 위의 아이들 장난감 사례와 마찬가지로 "목적"에 맞아야 한다.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어서 인형을 만들었는데, 인형이 코끼리 모양이라면 좀 그렇지 않겠는가.
요점은 이거다. 모든 모델에는 "목적"이 있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재미가 목적이고, 저주 인형은 저주가 목적이다. 우리 사회과학자들이 만드는 모델은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와 예측)"이 목적이다. 이건 사실 너무 광범위한 얘기고, 개별 연구마다 다 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의 내용과 형식은 너무도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델은 반드시 그 목적에 맞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목적에 맞도록 대상 현상의 요소들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포함시킬 것은 포함시켜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저주 인형을 모델이라고 간주한다면, 인형은 저주 대상자의 모든 특성 가운데 목적에 맞는 것만을 뽑아서 만든 것이다. 저주 대상에게 고통을 퍼붓고 싶어서 만든 모델에 호흡기, 순환기, 신경계, 인지능력 등 인간의 모든 특성을 다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따라서 모든 모델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모델을 만든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모델이 존재하고, 그 다름은 모델을 만든 사람(모델러)이 대상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즉 모델러의 세계관에 따라 대상 현상이 다르게 해석되고, 대상 현상의 특정 부분이 강조되며, 따라서 다양한 모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All models are wrong, but some are useful." 이란 말도 있다. 좋은 말인데, 좀 어렵다...^^;
A model is a purposeful representation of some real system(Starfield et al., 199).
모델은 실제 세계가 어떻게 생겼다고 하는 연구자의 "믿음"의 소산이다(출처는 기억 안남).
결국 모델은 "믿음"이다. 어떠어떠해야 하는 제약 따윈 없다. 모델 안에서, 사람은 팔이 세개일 수도 있고 눈이 하나일 수도 있다. 성별이 남녀 이외에 세 가지일 수도 있고, 반대로 성별이 없을 수도 있다(실제 진화 모델에서는 성별을 무시한 모델들도 많다). 그 믿음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용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중요하다. 다만 모델을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것과 그 모델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누구나 맘대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델은 보통 수명이 짧다. 구체적으로는 학술지에 실리기도 어렵고, 교과서에 나올 수도 없다. 쉽게 말해 팔리지 않는다.
모델이 믿음이란 얘기는 곧 과학적 모델이라는 것도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과 편견이 포함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시대의 발전에 따라 모델의 형태도 발전하기도 한다. 이후 얘기하게 될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은 주로 컴퓨터 프로그램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사회)과학에서의 모델은 방정식의 형태가 많다. 또 원과 사각형, 화살표로 이루어진 그림의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모델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건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선 곧 더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에 산다. 모델러는 특히 그렇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모델에 대해 Wrong! 이라고 외칠 자격은 없다. 다만 Disagree! 할 수 있을 뿐. 위의 사진에서처럼, 내겐 누군가의 모델이 헛된 믿음의 소산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내 믿음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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